꼴까타 마더하우스 / 마더테레사하우스

The Mother House


봉사는 자랑이 아니다. 그래서 이 글을 써야하나를 고민을 했다. 꼴까타 여행에 있어서 가장 강렬한 기억을 꼽자면 마더테레사하우스를 빼놓을 수 없기때문이다. 꼴까타하면 마더하우스다. 하지만 꼴까타에 방문했다고 자원봉사활동을 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여행을 떠나온것이지 봉사를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작 며칠 봉사활동하는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는데, 비록 원데이패스로 하루의 봉사활동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던 곳이다. 기회가 있으면 봉사활동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다.


인도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여행자들에게 꼴까타로 입국을 했다고하면 다들 마더하우스에 대한 질문을 했다. 예전에는 제법 봉사자들이 많았던것 같은데, 내가 꼴까타를 방문했을때에는 여행자거리인 서더스트리트에 여행객들을 많이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봉사자들도 많이 줄어든 기분이랄까... 하지만 의미있는 시간을 남기고싶다면 꼴까타에서 마더하우스를 찾아가보라 하고싶다.





운좋게도 마더하우스에 봉사활동을 가는 한국인 여행객을 만나서 어렵지 않게 쫓아갈 수 있었다.

호텔갤럭시가 있는 골목에서 봉사자들이 모여 출발하는 경우가 많으니 찾는길이 어렵게 느껴지면 오전에 이 골목에 오면 된다.




마더하우스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있기때문에 골목에서 간판 사진 하나만 찍어두었다.



첫날 바로 봉사활동을 하고자하는 경우 원데이패스를 받고 봉사를 시작할 수 있다.

오전 6시 30분에 서더스트리트에서 봉사자들이 모여 출발하는 무리를 발견할 수 있는데, 20분정도 무슬림거리를 지나 큰길가로 오면 마더하우스를 찾을 수 있다. 약간 골목안쪽에 위치해있기때문에 초행자들은 찾기 어려울 수 있는데 인력거꾼들이 아침에 봉사자들을 마더하우스로 태우기위해 줄서있으니 그 편을 이용해도 된다. (가격은 20루피정도면 적당한듯?)


만약 2일 이상의 장기 봉사활동을 하고싶은 경우 월,수,금 오리엔테이션이 있는 날 오후 3시에 마더하우스 근처에있는 시슈바반(Nirmala Shishu Bhavan /Children's Home)을 방문하면 된다. 자신이 봉사하고 싶은 곳과 기간을 정하여 수녀님과 상담후에 배정받을 수 있다. 한국인 수녀님도 계시고, 한국인 봉사자들이 제법 있기때문에 한국어로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된다고 한다.





나는 이곳에서 장기봉사를 하고 계신 여행객분과 1주일째 봉사중이던 H양을 만나서 졸졸 따라갔던지라 마더하우스를 찾는것은 어렵지 않았다. 원래 원데이패스로 하루 봉사할경우 프렘단이라는 아동기관에서 봉사활동을 해야하는데, 수녀님께서 H양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라고 시슈바반(Shishu Bhavan)으로 배정해주셨다. 


- 원데이패스가 원래 시슈바반만 봉사를 하는건지 정확하지 않다. 

  왜냐면 시슈바반은 여자 봉사자들만 할 수 있는 곳이니, 원데이패스로 프렘단에 가는게 맞는것 같은데...





오전 7시에 짜이 한잔과 빵 그리고 바나나를 나눠먹으며 다른 봉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미 1주일동안 봉사를 한 H양은 여러 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어있었다. 저분은 직업이 뭐고, 저 분은 한국어를 잘한다는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그 한국어를 잘하시던 분은 몇달뒤에 선교자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위해 한국으로 오신다고 했다. 봉사자들끼리 허물없이 자신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우리 이외엔 한국인 봉사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장기봉사하는 여행객 오빠의 말로는 한달동안 다른 한국인들이 없었다고 한다. 아마도 여행 비수기에다가 꼴까타로 입국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그런것 같았다. 그렇게 간단히 아침을 먹고, 종소리가 울리면 모여서 수녀님의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 봉사자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준다. 


처음엔 어리둥절해서 쳐다만 보고 있었는데, 마지막날인 봉사자들이 눈물을 흘리는걸 보며 기분이 어떨까를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기도문을 읽은 후 각각의 봉사장소로 이동을 한. H양과 함께 봉사자들이 떠나고 남은 자리 정리정돈을 하면서 한국인 수녀님이 챙겨주셨는데, "이런거 안해봤을텐데 미안해서 어쩌나..." 하면서 직접 양잿물에 손을 넣어 걸레를 빨아서 건네주시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고무장갑같은 것을 끼고 청소를 하는게 아니라 직접 손을 담가 청소를 해야하는데, 이런것을 안해봤을 젊은이들이라 걱정이 되어 수녀님이 직접 빨아서 건네주시는게 굉장히 죄송했다. "아니에요. 제가 해도되요." "걸레는 내가 빨아줄께요. 바닥 청소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하면서 건네주실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머지 정리정돈을 하던 대만, 일본에서온 봉사자들과 함께 시슈바반으로 향했다. 슈바반은 여자봉사자들만 봉사활동이 가능한데 갓난 아기, 고아, 장애어린이들을 도와주는 곳이다. 도착해서보니 이미 서양인 봉사자들이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동양인 봉사자들은 자연스럽게 빨래를 도와주러 이동을 한다. 이게 영 아이러니한거다. 서양인 봉사자들은 아이를 돌보는 것을 봉사라 생각하고, 동양인들은 몸으로 도울 수 있는 것을 봉사라고 생각하는 느낌이랄까?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양인 봉사자들 빨래를 안시키는게 아니라, 하는 모습이 답답해서 동양인들 스스로 빨래나 청소를 하는 쪽을 선택한다고 한다. 


인도 수녀님과 일하시는 분들이 빨래를 하고 계시길래 나는 빨랫줄에 널어놓는 것을 선택했다. 오기전에 마더테레사하우스 봉사활동을 검색했을때, 한국인 봉사자들이 빨래를 하고 있는 사진을 봤었는데 빨래를 하고 계신분들은 전부 현지인들이었다. 빨래가 아닌 빨래를 널어놓는 것을 선택한것이 영 찜찜했지만 그래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는게 낫겠다 싶었다. 빨래를 널어놓는 것에 나름 규칙이 있어서 아무데나 널어놓으면 오셔서 빨래를 다 거두어가서 다시 널으셨다. 여기만의 규칙이 있다. 나중엔 빨래를 널때 어디다 널어야하는지 물어보고, 빨래를 털어 널었다. 빨래의 양이 엄청 난데다가 이불시트같은건 크기도 크고, 빨랫줄의 높이도 있어서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꼴까타의 뜨거운 태양이 고개를 내밀때 쯤이면 햇살을 정면으로 보고 1시간 넘게 빨래를 너는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매번 세탁기르 빨래를 하는것에 익숙해져서, 이런 대규모의 빨래널기를 처음해보는 나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리고 키도 작은 동양인보다 키큰 서양인들이 빨래를 널어놓는게 더 잘할 것 같은데 그들은 아이들과 놀아주기, 동양인들은 빨래 널기쪽으로 구분되어 있는게 이상했다. 우리는 힘쓰는 것을 봉사로 생각하고, 서양인들은 마음을 쓰는 것을 봉사로 생각하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빨랫줄의 빨래가 가득찼을때쯤 봉사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실내로 옮겨서 아이들과 놀아주면 된다고 한다. 나는 아이들이 낯설고 어색해 잘 놀아주지 못했다. 아이들을 무서워하기때문이다. 사촌동생들도 놀아주지 못하던 나인데, 어린데다가 장애를 가진 아이들, 그리고 말도 통하지 않는다는게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옆에 앉아서 아이들이 집어 던지는 장난감을 맞아야 했고, 침을 질질 흘리는 아이들의 입가를 닦아주어야 했고, 싸우는 아이들을 말려야했다. 다른 봉사자들은 익숙하게 아이들을 돌본다. 말을 걸고, 노래를 불러주고, 장난을 친다. 나는 그렇게 어색하게 아이들틈에 앉아있는 사이 봉사자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티타임시간이라 한다. 뭐한게 있다고 이렇게 힘든건지 진이 다 빠졌다. 봉사자들이 모여서 조근조근 대화를 나누는데, 나는 지쳐서 짜이한잔과 쿠키를 입에 물고 넋을 뺐다. H양은 나를 걱정해서 괜찮냐고 다독였지만, 아무래도 아이들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무래도 이곳은 나에게 안맞는것 같아...'


그리고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야했다. 인도 수녀님이 나에게 밥 한그릇과 수저를 주시더니 아이들과 떨어져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에게 밥을 먹이라 하셨다. 아이에게 다가가 수저를 내미니 밥을 먹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린다. 당황했다. 밥이 먹기 싫다고, 아예 고개를 돌려버리는 아이를 어떻게 다독여야할지를 모르는거다. 아무래도 내가 이 아이에게 밥을 먹일 수 없을 것 같아서 H양에게 바톤터치를 해야했다. 어르고 달래서 밥을 먹이는데 그게 정말 신기했다. 봉사자들이 아이들을 붙잡고 밥을 먹이는데, 나도 다른 아이들에게 밥을 먹였다. 입에 넣어주면 내뱉어버리고... 진심 멘붕이었다. 결국 나는 아이하나 제대로 밥을 먹이지 못해서 인도 수녀님이 아이를 안고 먹이시는데... 그렇게 내가 주던 밥을 거절하던 아이가 정말 잘 받아 먹는거다. 아무래도 내가 아이를 안고 먹이는 자세가 불편했고, 익숙하지 않아서였을꺼다. 이래서 장기봉사를 해야하는 이유가 아이들에게 자주 사람이 바뀌는것이 안좋기때문인것 같다.


그렇게 아이들 밥먹이고나서 놀아주는 사이 인도인들이 단체로 시슈바반을 방문했다. 이곳의 시설을 둘러보러 온건지, 봉사자들과 아이들을 구경하는 것처럼 둘러보고 나간다. 그 사이에 나도 영 어색하게 장난감을 들고 아이들의 관심을 끌어본다. 그리고 12시쯤 봉사가 끝났다. 진이 다 빠졌다. 아무래도 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봉사활동을 못할 것 같다. 여행을 왔지만 꼴까타에 눌러 앉아 봉사를 선택한 H양의 결정이 신기했다. 비행기 티켓 연장을 하면서까지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싶냐 물었더니 자기는 지금 봉사활동을 하며 꼴까타에 머무는 시간이 정말 좋다고 했다.


내가 남은 2달 반동안 인도 곳곳을 여행하는 기간내내 H양은 꼴까타에 머물며 봉사활동을 했다. 

이렇게 마음먹고 장기로 머무는 사람이 제법 많다고 한다.





오전 봉사활동을 끝내고 서더스트리트로 돌아가는 길. 오전 봉사만 해도 체력이 많이 소진되어 종일 봉사는 대부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오늘 같이 봉사를 했던 일본인 봉사자는 여행사를 통해 마더하우스를 방문했다고 한다. 숙소가 솔트레이크 쪽인데, 일본인 여행객들은 여행사를 통해서 패키지로 봉사활동을 한다는 이야기에 충격이었다. "봉사활동을 여행사 프로그램으로 왔다구요?" 그분은 직업이 약사였는데, 아이들을 정말 좋아하셨던것 같다.





마더하우스에서 서더스트리트로 돌아오는 길은 무슬림거리라서 소고기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정육점을 볼 수 있다. 진심 이 모습들은 내가 정말 인도에 있는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무슬림들이라 돼지고기는 팔지 않고, 소고기들을 매달아 놓았다. 인도사람들은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는건 편견이었다. 인도인중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이 소고기를 먹지 않는거지 인도안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것을 일깨워준 거리의 풍경이었다.



그렇게 하루의 봉사활동이었지만, 많은 임팩트있는 경험을 주었던 마더하우스... 나의 꼴까타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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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식도락가를 꿈꿉니다! By.silverly(실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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