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2009.8.31.) 인권위를 상대로 한 삼성전기 측의 권고처분 취소 행정소송에서 삼성전기 측이 패소했습니다. 아직 일심 판결이고, 삼성전기 측에서 항소를 준비할 것 같지만, 매우 의미있는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관한 내용은 인터뷰 해당 관련 부분에서 간략하게 그 의미를 요약하고, 관련 언론기사들의 링크를 넣었습니다.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요약
1. 직장내 성희롱은 권력적 상하관계에서 생겨난다.
2. 가해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피해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3. 그런데 관습적인 사고방식상 남자들은 가해자 남성의 관점을 내면화(고정관념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4. 만약에 가해자가 멋지게 생긴 영화배우라면? 그건 가해자의 변명에 동조하는 남자들의 궤변일 뿐이다.
5. 결론은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니네라서 안되는거야!!"
인터뷰 정리.
1 이은의가 말하는 삼성전기 성희롱 사건의 개요.
민노씨(질문) : 삼성전기 성희롱 사건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사건 개시시점에서 현재까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해주시면요?
이은의(답변) : 성희롱은 2004년부터 2005년까지 1년 반 정도 지속이 되었고요. 2005년 6월에 (회사에) 고지했고, 그런 상태로 약 7개월 동안 업무를 받지 못하고, 업무팀에 혼자 앉아 있었죠.(주: 이번 인권위 vs. 삼성전기 간 행정소송의 주요 쟁점 사실들 가운데 하나. "성희롱 피해자에게 7개월 동안 대기발령을 내린 것은 실질적인 불이익 조치에 해당" YTN. 2009.08.31. 보도 중에서 법원 판결 간접 인용문구를 재인용). 발령은 그 다음해인 2006년 2월에 받았어요. 2006년 2월에 간 부서에서도 전혀 업무를 받지 못하고 왕따를 당하다가, 2007년 2월에 일방적으로 "팽"을 당한거죠. 한마디로, 너랑 일 못하겠다.
민노씨 : 벌써 햇수로는 6년이 됐네요?
이은의 : 그렇죠. 4, 5, 6, 7, 8, 9. 제 인생에서 제 회사생활이 11년찬데, 그 중에서 6년이 이런 문제에 대한 갈등과 다툼으로 지나가고 있고요. 현재는 발령 받은 사회봉사단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민노씨 : 오늘(인터뷰 진행일) 행정소송이 있는 날(판결선고일은 아니고, 공판이 있던 날이었던 듯)이었다고 하셨는데요. 행정소송이라고 하면 어떤 사건을 말하는 건가요?
이은의 : 제가 2004년부터 2005년까지 성희롱이 있었고, 2005년에 그걸 고지했잖아요?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2006년에 배치를 받았고요. 2007년 초에 계속 불이익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회사에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했어요. 성희롱도 어떻게 참겠고, 장기간의 발령대기까지도 어떻게 참겠는데, 그런데 장기간 발령대기를 감수하고 간 부서에서조차 업무를 못받고 이렇게 왕따를 당하고, 결국은 다른 부서로 쫓겨가게되는 상황, 결론적으로 보면 회사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는 이 상황, 결국 그렇게 됐는데, (이런 정상적인 회사생활이 불가능하게 방치한 부분에 대해 회사에 대해) 그럼 너희들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배치를 받는다고 해도 내가 제대로 정상적인 회사생활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지 않는가, 이걸 어떻게 해결했으면 좋겠나, 이렇게 문제제기를 했죠.
그런데 그 때 회사에서 갑자기 전면적으로 부인을 하고 나와요. 그 전까지는 부서배치를 하고 이런 저런 우여곡절이, 어쨌거나 성희롱을 고지했는데, 회사가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리액션으로 그나마, 부서배치나마 늦게나마 되고 이런 상황이 있었던건데요. 제가 2007년에 정식으로 (성희롱 고지후 불이익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니까 회사에서 전면적으로 아무것도 없었단거죠. 그러니까 성희롱도 없었고, 발령대기도 없었고, 왕따도 없었고, 업무박탈도 없었다. 이렇게요.
그래서 제가 인권위원회에 제소를 했었고, 그로부터 약 1년후쯤에 인권위에서 권고를 했어요. 2008년 가을에요. 이에 대해 삼성전기는 성희롱이 있었든 없었든 그 권고를 인권위가 하면 안됐고(즉 인권위는 그런 권고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주장), 모든 것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 이러면서 (삼성전기 측에서 인권위를 상대로) 행정적으로 그 처분을 취소해달라 소송을 한거죠. 그래서 행정소송인거죠.
* 최근 관련 행정소송 1심 결과 : 인권위 권고는 정당하다.
앞서 말했듯 행정소송(일심) 결과가 최근(09.08.31.) 공표됐다. 이하 기사작성일은 모두 2009년 8월 31일. 이번 행정소송의 의미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1. 인권위가 삼성전기에 성희롱 재발 방지대칙 및 피해자 보호 필요 조치 강구하라고 낸 '권고 처분'은 정당하다.
2. 성희롱 피해자에게 7개월 간의 대기발령을 냈다면, 이는 "실질적인 불이익조치"에 해당한다.
3.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이 충돌하는 가운데, 이를 위한 진상조사를 게을리 했다면 이는("진위 파악조차 시도하지 않았다면") 이는 회사측으로선 적절한 대처를 했다고 볼 수 없다.
앞서 말했듯 행정소송(일심) 결과가 최근(09.08.31.) 공표됐다. 이하 기사작성일은 모두 2009년 8월 31일. 이번 행정소송의 의미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1. 인권위가 삼성전기에 성희롱 재발 방지대칙 및 피해자 보호 필요 조치 강구하라고 낸 '권고 처분'은 정당하다.
2. 성희롱 피해자에게 7개월 간의 대기발령을 냈다면, 이는 "실질적인 불이익조치"에 해당한다.
3.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이 충돌하는 가운데, 이를 위한 진상조사를 게을리 했다면 이는("진위 파악조차 시도하지 않았다면") 이는 회사측으로선 적절한 대처를 했다고 볼 수 없다.
참조 기사.
"삼성전기 성희롱대책 인권위 권고조치 정당" (연합뉴스, 2009/08/31)
대체로 이 연합뉴스 기사를 참조해서 타언론사들 역시 기사들을 작성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직접 취재를 하고 있는 언론사들은 없어 보인다. (관련 : 한겨레의 인용기사. )
법원 "인권위, 삼성전기 '성희롱 대책' 권고 정당" (조선닷컴, 뉴시스 인용) : 요약형 전달 기사.
"삼성전기 성희롱 시정권고 정당" (YTN, 김도원, 2009-08-31)
대기업 ‘성희롱 예방 권고’ 불복 소송에서 패소 (파이낸셜뉴스, 2009-08-31)
* 관련 - 성희롱 일반. YTN의 관련기사 정리가 잘 되어 있길래 참조가 되실까 싶어서.^ ^
법원, "'가슴보이니 닫아, 신경쓰여'는 성희롱" (YTN, 2007-12-27)
파업중인 교직원 노조의 여성 노조원에게 "가슴이 보이니까 닫아요" 등의 말을 한 교수의 행위를 법원이 성희롱이라고 판단했다는 전하는 기사. 간략한 재판부의 판단을 전하고 있는 기사라서 구체적인 정황(사실관계)의 파악은 어렵다.
"버스 옆자리 여고생 다리 찍은 교장, 유죄" (YTN, 2008-04-24)
버스에서 옆자리 여고생의 다리를 촬영한 초등학교 교장에게 벌금 100만원이 선고되었다는 기사. 교장은 '우연히' 촬영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정황상 강제 촬영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위 기사와 마찬가지로 매우 짧게 핵심 사실관계만 전하고 있는 기사라서 구체적인 사실관계 파악은 어렵다. 적어도 사건번호 등은 함께 기사에 부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희롱' 서울대 교수 정직 중징계 (YTN, 2008-10-24)
수업일환으로 학생들과 주말에 영화 관람 본 뒤에 불참한 일부 여학생들에게 몇 차례씩 전화를 걸어 영화를 함께 볼 것을 종용한 교수에게 서울대 징계위원회에서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는 기사. 서울대 자체내의 징계라는 점에서는 이상에서 본 기사들에서 다룬 성희롱 사건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것 같다. 통화 내용이 핵심이겠는데,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적어도 표면적으론 가장 느슨하게(즉, 성희롱 성립이 쉽도록) 성희롱 행위 성부를 판단한 경우라는 생각이 든다.
법원, "'가슴보이니 닫아, 신경쓰여'는 성희롱" (YTN, 2007-12-27)
파업중인 교직원 노조의 여성 노조원에게 "가슴이 보이니까 닫아요" 등의 말을 한 교수의 행위를 법원이 성희롱이라고 판단했다는 전하는 기사. 간략한 재판부의 판단을 전하고 있는 기사라서 구체적인 정황(사실관계)의 파악은 어렵다.
"버스 옆자리 여고생 다리 찍은 교장, 유죄" (YTN, 2008-04-24)
버스에서 옆자리 여고생의 다리를 촬영한 초등학교 교장에게 벌금 100만원이 선고되었다는 기사. 교장은 '우연히' 촬영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정황상 강제 촬영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위 기사와 마찬가지로 매우 짧게 핵심 사실관계만 전하고 있는 기사라서 구체적인 사실관계 파악은 어렵다. 적어도 사건번호 등은 함께 기사에 부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희롱' 서울대 교수 정직 중징계 (YTN, 2008-10-24)
수업일환으로 학생들과 주말에 영화 관람 본 뒤에 불참한 일부 여학생들에게 몇 차례씩 전화를 걸어 영화를 함께 볼 것을 종용한 교수에게 서울대 징계위원회에서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는 기사. 서울대 자체내의 징계라는 점에서는 이상에서 본 기사들에서 다룬 성희롱 사건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것 같다. 통화 내용이 핵심이겠는데,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적어도 표면적으론 가장 느슨하게(즉, 성희롱 성립이 쉽도록) 성희롱 행위 성부를 판단한 경우라는 생각이 든다.
이은의 : 제가 직장을 다녔던 여자로서 대답을 하자면요. 같은 남자였다면 요구받지 않거나, 같은 남자였다면 행위받지 않았을 걸 행위받고, 거기에 대해 제가 직접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그러니까 관계상, 상하관계가 있잖아요, 그 다음에 제가 받을 수 있는 여러가지 데미지가 있고요. 그런 것들이 연속선상에 놓여져 있을 때, 그걸 직장내 성희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거기에 대한 대전제로는 피해자인 제가 그 행위로 인한 수치심이나 불쾌감을 현저히 느꼈을 때...
2 도대체 성희롱은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
민노씨 : 성희롱 행위를 객관적으로 확정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잖아요? 제도상으론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기도 대단히 어렵고. 특히 우리나라의 조직문화나 관습적인 문화상 가해자 입장에서도 "그냥 후배라서 귀여워서, 이뻐서, 얘도 날 좋아하는 줄 알고 그랬단말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이은의 : 전 그 부분에 대해선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예의를 지켜서 그 행동을 하냐에 따라 그 부분이 이미 결정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굉장히 친근해, 그렇다고 만져도 되나요? 굉장히 친근해, 그래서 외모에 대해서 비하해도 되나요? 굉장히 친근해, 그래서 거래선이랑 만나면서 블루스를 추라고 강요해도 되나요? 그런건 아니잖아요?
민노씨 : 그러니까 그걸 강요로 느끼느냐, 아니면 나도(여성입장에서) 친근하다, 친한 오빠같다, 이렇게 느끼느냐, 그러니까 대학 동아리 선배 오빠 같다.. 이렇게 느끼느냐.. 이걸 어떻게 (객관적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요?
이은의 : 전 그렇게 얘기하고 싶어요. 그래 블루스를 췄어. 행위적으로 그런 행동이 나왔어요. 그런데 그게 행위의 관계상 열자(약자)에서 능동적으로 권해서 그런 행동을 했으면 문제가 될게 없겠죠. 그런데 강자 입장에서 얘기를 할 때는 감안을 해야 하는게, 이게 가족간에, 언니나, 아빠나, 할아버지의 입장인게 아니잖아요. 강요가 될 수 있다는 거죠.
민노씨 : 그럼 말을 좀 잘라서(죄송합니다만...), 그럼 약자는 강자에게 성희롱(을 가해)할 수 없나요? (주: 질문이 지금 보니 좀 바보 같은데, 당연히 직장내 성희롱은 약자가 강자에게 가할 수 없는 요건적 속성을 갖는다)
이은의 : 약자는 강자에게 성희롱을 가해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건 직장내 성희롱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우발적인 행위고, 그 자체로는 성추행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직장내 성희롱이라는 개념에서는 벗어난 것 같아요. 직장내 성희롱이란 개념이 도입된 이유는 강자의 입장에서 약자를 향해 거부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부(회사, 직장관계 바깥)에서는 할 수 없는 행위를 이쪽에(회사, 부하직원) 강요하거나 행위하면서 발생하는 거거든요.
민노씨 : 말씀하신 바는 충분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강자가 여성일 경우에, 가령 그런 영화도 있었죠, 데미 무어와 마이클 더글라스가 주연한 [폭로]라는 영화, 그런 상황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이은의 : 물론이고요. 그건 동성간에도, 모두가 이성애자인건 아니잖아요. 레즈비언도 있고, 게이도 있고요. 비단 남자가 여성에게 그런다가 아니라, 권력의 우위에 서 있는 사람이 '내가 이렇게 행위했을 때 감히 저항할 수 없을거야'라는 전제로 상대를 희롱하고, 농락하고 한다면, 그게 생물학적인 이성이냐, 동성이냐로 나눌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민노씨 : 그렇다고 한다면, 그래도 꽤 직장생활을 오래 하셨잖아요. 우리나라 전체 직장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에서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셨는데, 남성이 가해자인 성희롱의 문화, 아니 문화라고 할 수는 없겠죠, 범죄니까, 이런 범죄 유형이 압도적이라고 판단을 하시나요?
이은의 : 그럼요. 저는 일상에서도, 지금도 많이 느껴요. 그걸 저한테 직접하지 않아도, 저는 일종의 아웃사이더 같은 존재잖아요, 그러니까 저한텐 직접 안하죠, 하지만 제 주변에서는 여전히 일어난다는거죠. 부서에서 보기도 해요. 부서에서도 그렇고, 부서 외적으로도 그렇고요. 그런건 여전히 비일비재해요. 예전보다 좀 나아졌을 뿐이지.
3 직장내 성희롱을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 가해자의 시선 : 진실과 변명 사이.
민노씨 : 그렇다면 남장의 입장을 대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좀 남성입장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질문을 드려보면, 이게 똑같은 행위를 해도, 이걸 남성이 여성에게 하면 성희롱인데, 여성이 남성에게 하면, 우리네 감수성에선 대체로 남성들이 "그려려니" 이렇게 하는 것 같다는거죠. 이런 부분을 인정하시는 편이신가요? 인정하지 않는 편이신가요?
이은의 : 저는 직장내 성희롱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나오는 오해(착각?)라고 생각을 해요. 직장내 성희롱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이자 (이런 성희롱이 나올 수 있는) 이유가 뭐냐면 가해자가 조직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거든요. 어떤 계급적인 우위기도 하지만, 관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피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쉽게 저항하지 못하고, 저항이 표출되었을 때 그걸 힘으로 억압할 수 있는 우위에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거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부분에 대한 오해가 있으신게 아닌가...(싶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여자가 상사, 선배고, 여자가 후배, 부하직원 남자에게 그런 행위를 했다면 당연히 성희롱이죠, 성적 수취심을 유발하는 행위를 했다면요. 그거는 당연한 것 같아요. 그걸 그런데 남자 대 여자, 남자가 반드시 가해자고, 여자가 반드시 피해자고... 이게 아직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인거죠. 저는 그거보다는, 힘의 우열차원에서 누가 힘의 우위에 서 있는가, 누가 힘의 약세에 서있는가, 이게 더 직장내 성희롱의 관건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저의 경우도, 이게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될 수 밖에 없었던 게, 제가 이 일을 당하고 있는데, 상대방(가해자)가 만약 제 후배사원이었다면 제가 가만있지 않았겠죠. 후배는 고사하고, 조금만 동등하게 느껴지는 선배였어도, 이건 이건 조기에 끝났을거에요. 그런데 고과를 주고, 인사권을 가지고 있고, 진급을 시켜줄 수 있고, 다른 부서로 보낼 수도 있고, 여러가지 권한을 가진 부서장으로부터 (이런 성희롱 행위가) 일어난다, 라는 차원이 있기 때문이거든요.
민노씨 : 그렇다고 한다면(피해가 장기화되는 것), 가정을 해보면요, 일테면 이야기가 통하는 상식적인 직장상사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또 특히 (가해자보다 높은 직급의) 여성인 직장상사에게 중재를 요청하거나 해서, 피해가 가중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상상도 저는 해보는데요. 그런 상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이은의 : 예를 들어서, 피해자가 사원이고, 가해자가 과장인데, 위에 부장이 어느 정도의 공정성을 보여준다. 그럼 그게(원만한 조기 해결) 가능하겠죠. 그런데 통상 보면은, 이게 어정쩡한 직급의 상사와 하위직, 이렇게 일어나는게 아니거든요. 피해자 입장에서 봤을 때는, 가해자인 상사와 평소엔 만날 수 없을 만큼 간격이 있는...
민노씨 : 그건(성희롱은 주로 편차가 큰 상하관계에서 일어난다는) 이은의씨의 개인적인 견해인가요? 아니면...
이은의 : 아뇨, 아뇨. 그건 제가 (제 주변의 관련자료들을 접하면서) 그렇게 체험한다는 거에요. 그렇다면 전반적으로 성희롱 제소가 들어오고, 문제가 되는게(판례화된 사건들)이 자기 사수(바로 윗상사)와의 문제라던가, 사원과 대리, 사원과 주임, 이런 직급이어야 하잖아요. 혹은 동기들간에.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거죠.
민노씨 : 그렇다면 그런 통계를 알고 계시나요?
이은의 : 그럼요. 예전엔 여성부에서 했던, 지금은 인권위에서 하고 있는데요. 인권위에서 매년 통계를 내요. 거기에 나오는 것들을 보면, 사장, 부사장, 임원, 혹은 부서장.. 이런 사람들과 일반 평직원 여성, 평직원은 아니더라도 대리 정도의 여성들 간에 생기는 마찰이 가장 많거든요. 그러니까 성희롱은 관계가 친밀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에요. 관계가 친밀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죠. 가해자 입장에서 친밀함을 가장해서 변명하고, 친밀함을 가장해서 다가와서 문제지, 성희롱 문제는 관계가 친밀해서 생기는 문제는 아니라는 거죠. 정말 친밀하면 그런 문제가 생기겠어요? (서로) 친밀하면 (어느 일방이 싫어하면) 안하겠죠. 혹은 (일방이) 싫어도 (상대방을) 봐주겠죠. 이렇지 않다는게 뭐냐하면, 사실은 친밀하지 않다는게 문제인거거든요.
4 결론 : 니네라서 안되는거야!
민노씨 : 이게 좀 우스개 소린데요. 가령, 남자가 잘 생긴 영화배우에요. 그런데 하는짓만 보면 성희롱이야, 이런 경우에 "저 놈은 성희롱 범죄자야!" 이렇게 느낄 여성들이 많을것인가? 뭐 이런 생각, 이런 엉뚱한 상상도 해볼 수 있잖아요?
이은의 : 저는 그러면 "너 그 영화배우처럼 바꾸고 와!" 이러고 싶어요. (그러니까) 그게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고, 그런 가해자 관점에서 보면 안된다는거죠. 그러니까 "누구였으면 괜찮았을거잖아!"라는 이야기는, 사실이냐 아니냐와는 상관이 없는 '가해자'입장에서의 항변인거잖아요('변명'에 불과한거잖아요, 라는 취지인 듯).
민노씨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성희롱 범죄) (광의의 형법상) 범죄라는거죠. 그런데 이게 비록 친고죄(주: 피해자인 고소권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가 가능한 범죄)이긴 하지만, 피해자의 주관적인 요소에 따라 범죄가 되었다 말았다.. 이런 건 법적 안정성에, 더군다나 형법적인 범죄, 국가공권력이 발동되는 제도로선 좀 불안정한 것 아닌가, 뭐 그런 관점인거죠.
이은의 : 그럼 제가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해볼게요. 가령 예를 들어서, 제가 제 사수와 친해요. 그 사수 위의 과장과는 굉장히 안친해요. 그런데 제가 만약에 나쁜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막 울면서 나왔어요. 그래서 사수가 저를 보고, "왜 울어, 무슨 일 있었어?" 이렇게 하면서 다독여요. 그런데 그 옆에서 과장이 그걸 봤어요. 그런데 사수 관계에 있는 애가 그렇게 하니까 자기도 그렇게 해요. 그럼 그게 맞나요?(상식적인 행동이냐는 취지인 듯) 그건 아니라는거죠.
그게(인간적인 스킨쉽)이 되는 관계가 있고, 안되는 관계가 있는데, 가해자들의 항변(이은의씨 답변 취지상 '변명' 정도로 이해하면 적당할 듯)이, 그 시각이 굉장히 무서운게, "너 그럼 너희 아버지가 그러면 괜찮잖아" "너 친한 오빠가 그랬으면 괜찮을거잖아" "왜 우린 안되는데?" 이렇게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어요.
"니네니까 안되는거야!"
그런데 '니네'가 굉장히 많다는거죠. 하면 안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요.
민노씨 : 그러니까 친밀한 사람, 특별한 사람은 소수일 수 밖에 없다는 의미신가요?
이은의 : 네, 그렇죠. 그런 특별한 친밀함을 나누는 사람은 극소수죠. 그런데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과 사적으로 나누는 피해자의 신체적인 권리를 그들(가해자)를 위해 왜 포기해야 하는지, 왜 그걸 가해자의 시각에서 사회가 (포기하도록) 강요하는지 모르겠다는거죠. 왜 내가 특별한 친밀감을 모든 사람에게 허용해야 한다는 것처럼 이야기하는건지 모르겠다는거죠.
민노씨 : 이 문제는 사회가 좀더 성적으로 개방화되는 것과는 상관이 있는 문젠가요, 없는 문젠가요?
이은의 : 이건 사회가 성적으로 개방적인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성적으로 개방화되도 이런 문제는 똑같이 발생할 것으로 생각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영화가 있잖아요. 거기보면 노교수에게 추파를 던지는 여학생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추파를 던진다고 해서 그 여학생들을 그 주변의 남자들이 만져도 되는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이 문제는 그 피해자가 성적으로 개방적이냐 아니냐, 아니면 사회 전반이 성적으로 개방적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개인이 스스로 정서적인 친밀감을 갖고 있지 않는데, 가해자가 불쑥 "나는 친밀해"를 주장하면서, 약자에게 신체적인 접촉을 가한다던가, 혹은 언어적인 폭력을 가한다던가, 이건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 이상 인터뷰 1/3 녹음분(25분) 정리. 총 73분. 이후 계속 정리.
5 간단한 인터뷰 정리 후기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스스로에게 놀랐던 건 나 역시 '가해자의 시선'',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남자인 가해자에게 동조적인 시선을 내면화하고 있었구나 하는 각성이었다. 내 안에 있는 관습적인 남성의 시선이, 나 자신 스스로 페미니스트로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깊숙히 내면화되었음을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느꼈다. 마치 여성 피해자가 '남성의 적'이라도 되는 양, 혹은 가해자인 남성이 마치 또 다른 피해자인양,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관습화된 남자의 시선'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런 식으로 성희롱를 주관적인 편향과 관습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 역으로, 그 피해자가 당신의 여친, 당신의 여동생, 당신의 어머니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문득 든다.
성희롱 피해자의 피해가 과장될 필요도 없고, 성희롱이라는 행위에 대해 마치 살인과 같은 불법처럼 과도한 무한 증오를 퍼부을 필요도 없다고 개인적으론 생각한다. 다만, 가장 중요한 건 이것이 범죄이고, 이것이 나쁜 짓이라는 거, 그리고 남자이기 때문에, 그런 남성적인 고정관념을 통해 사안을 바라볼 때 다시한번 생각해보라는 거다. 굳이 앞서 이야기한 내 여친, 내 여동생.. 이 아니더라도, 그저 이것이 '정당한 항변'이 아닌 '비겁한 변명'은 아닌지..
* 연재
삼성전기 성희롱 사건 1. 직장내 성희롱이란? : 조문과 판례를 중심으로 (2009.7.1.)
* 관련
"청바지 입은 여직원은 성희롱 해도 되나요" [인터뷰] 삼성전기 직원 이은의 씨 (성현석, 2008-08-19)
인권위 "삼성전기, 직장내 성희롱 철저히 대처해야" 직장내 성희롱 알린 이은의 씨의 '작은 결실'(프레시안, 강이현, 2008-09-10) : 인권위의 권고처분에 대한 기사.
"삼성전기 성희롱 사건, 노동부는 뭘 했나" 여성단체들, 노동부·경인노동청에 공개 질의(프레시안, 성현석, 2009-03-31)
"삼성전기 성희롱대책 인권위 권고조치 정당" (연합뉴스, 2009/08/31)
‘한국사회, 끝내 제2의 장자연을 원하는가! (무터킨더, 2009.4.6.)
삼성전기 성희롱, 노동부 ‘불기소의견’ 비판 (여성주의 일다, 조광복, 2009.6.16.)
* 이은의(짜스)의 글방(블로그)
http://blog.hani.co.kr/pjas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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