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을 목표로 하는 한국이 나이지리아를 맞아 운명의 한판 승부를 펼칠 예정이다. 한국으로서는 퇴장 징계로 경기에 나설 수 없는 오른쪽 미드필더 사니 카이타와 부상을 당한 왼쪽 풀백 타예 타이워의 공백이 느껴질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어떻게 측면을 공략하느냐가 관전 포인트가 될….
아, 재미없다. 그냥 이런 딱딱한 거 집어 치우고 나이지리아전 치킨 주문 공략법이나 짚어보자. 그러고 보니 지난 아르헨티나전 때 주문한 내 치킨은 아직도 안 왔다.
맥주와 치킨은 축구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축구 경기를 보는데 우리의 영원한 친구인 맥주와 치킨이 없다는 건 마치 박휘순이 없는 ‘뜨거운 형제들’과 같을 것이다. 하지만 맥주는 언제든 가까운 슈퍼마켓에 가 살 수 있는 반면 치킨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획득해야 해 월드컵 경기 내내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직접 언제, 어떻게 치킨을 주문해야 나이지리아전 킥오프 시간에 맞춰 따끈따끈한 닭다리를 뜯을 수 있을지 직접 발품을 팔아봤다. 물론 신뢰 수준은 3.1%, 표본오차는 ±95%다.
취재하러 치킨집 가본 건 또 생전 처음이다. ⓒ지나가던 손님
닭 멸종 시킬 기세
가장 먼저 동네 치킨집에 전화를 했다. “사장님, 기사를 좀 쓰려고 하는데 치킨 몇 시에 시키면 나이지리아전 킥오프 시간에 맞춰 배달이 될까요?” “네? 기사요? 그런 기사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바쁘니까 장난하지 마세요.” 이번 취재는 초반부터 난관이었다. 치킨집 사장님은 나를 그냥 이상한 놈 취급하고 있었다. 치킨집에 다짜고짜 전화해서 주문은 안하고 인터뷰나 하고 있으니 뭐가 될 리 없었다.
그래서 직접 몇 군데의 치킨집을 직접 찾기로 했다. 얼굴을 마주하고 물어본다면 보다 진실한 답변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부터 벌써 월드컵의 열기가 후끈후끈하게 느껴졌다. 일본과 네덜란드의 경기를 지켜보며 치킨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가게는 북적였다. 바쁜 와중에도 은근슬쩍 이 치킨집 사장님께 마늘 치킨을 주문하면서 나이지리아전 필승 주문 가이드를 물었다. 이 사장님은 친절하게도 노하우를 전해주셨다.
월드컵 특수와 맞물려 가히 어마어마한 양의 치킨 주문이 쏟아진다. 이 가게만 하더라도 한국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평소 배달 주문의 10배가 넘는 주문 전화가 걸려 온단다. 그리스전 당일에 믿을 수 없는 배달 주문에 일찌감치 준비한 분량을 모두 팔아치운 이 집은 아르헨티나전 당일에도 많은 닭들에게 출격 명령을 내리고 준비시켰지만 수요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 이미 경기 시작 전 준비한 닭들은 모두 고귀한 희생을 해야만 했다. 사장님은 닭을 튀기면서 이렇게 말했다. “도저히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 갑니다. 우리도 많이 팔고 싶은데 닭을 공수할 수가 없어요.”
“경기가 시작된 후로도 전화가 계속 걸려 와요. 더 이상 튀길 닭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나중에는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후반전이 시작하고는 아예 전화기 콘센트를 뽑아 버렸죠. 우리도 손님들의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지난 두 경기에서 저는 전쟁을 치렀어요.” 사장님의 눈빛이 애처로웠다. 나는 들고 있던 닭다리를 바라보며 잠시 깊은 침묵에 빠졌다. 물론 잠시 후 언제 그랬냐는듯 게걸스럽게 닭다리를 뜯었지만 말이다.
한 배달원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
사장님께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떻게 하면 한국 경기를 보면서 집에서 편하게 치킨을 먹을 수 있을까요?” 그러자 이 사장님은 나름대로의 비법을 알려줬다. “우리 가게는 예약을 받고 있어요. 아마 대부분의 가게들이 그럴 겁니다. 경기 시작 4시간 전쯤에 전화를 해 예약 주문을 하는 게 현명합니다. 물론 주문이 밀리면 예약 시간도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경기 시작 직전에 주문을 하는 것 보다는 빨리 치킨을 집에서 받으실 수 있습니다.” 역시 예약이 필수다. 물론 내 친구 김동혁처럼 노래방에서 몰래 우선 예약을 하는 편법은 여기에서 안 통한다.
막 배달을 마치고 돌아온 배달원도 만났다. 배달원 나름대로의 고충도 있을 것이다. 남들은 다 월드컵이라고 열광하는데 축구는 보지도 못하고 닭만 나르는 이들의 이야기도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치킨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한 배달원은 이렇게 말했다. “월드컵이요? 당연히 보고 싶죠. 하지만 일이 이렇게 밀려 있는데 어떻게 축구만 보고 있겠어요. 그냥 배달하면서 라디오로 듣고 있습니다.”
이 가게에는 모두 세 명의 배달원이 있는데 한국 경기 당일만이라도 더 많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할 수는 없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부정적이었다. “사장님 부탁으로 그 날만 일해 줄 제 친구들을 구해봤어요. 그런데 평소 일당의 두 배를 준다고 해도 한다는 친구들이 없어요. 다들 월드컵 경기 봐야한다고 하더라고요. 사장님이 개인적으로도 아르바이트생을 구해보셨는데 그쪽도 마찬가지래요.”
이 건실한 청년은 좋아하는 축구를 보지도 못하고 왜 열심히 이 시간에도 일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큰 눈에서 눈물을 금방이라도 떨어뜨릴 것처럼 말했다. “사장님이 우리 아빠라서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배달원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2010 남아공월드컵 예선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경기가 벌어진 17일 치킨집이 월드컵 특수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닭들의 절규가 들리지 않는가. “우리하고 축구하고 무슨 상관인데!” ⓒ연합뉴스
배달 주문 공략법은?
다른 가게에 들렀더니 이곳의 스크린에서도 일본과 네덜란드의 경기가 방영되고 있었다. 역시나 많은 이들이 네덜란드를 응원하면서 치킨과 맥주를 즐기고 있었다. 나도 자리를 잡았다. 벌써 다른 가게에서 배터지게 치킨을 먹었지만 투철한 기자 정신을 발휘해 이번에는 “양념 치킨과 무 많이 달라”는 주문을 하고 사장님께 말을 걸었다. 이 와중에 손님은 점점 늘어갔다. 그렇게 우리의 닭들은 소리 없이 누군가의 뱃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아,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이 가게 사장님도 한 가지 배달 주문 공략법을 전수해 주셨다. 이 사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주문이 바로 모든 손님을 슬프게 하는 주범이죠. 가장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게 후라이드 치킨인데 반반씩 해달라는 손님이 많으면 그만큼 조리 속도도 느리고 주문이 밀릴 수밖에 없어요. 아마 몇몇 가게들은 이날 반반 주문을 받지 않는 걸로 알고 있어요.” 우리 인간적으로 이날만큼은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시키지 말자.
마지막으로 한 가게를 더 찾았다. 일본과 네덜란드전이 막 끝나갈 무렵 찾아간 이곳은 사장님이 자리에 없어 홀 서빙을 하는 종업원과 대화를 나눴다. 종업원도 물론 주문 요령에 대해 한 마디했다. “괜찮으시다면 배달 주문보다는 직접 가게에 들러서 치킨을 가져가시는 것도 좋습니다. 배달원의 수가 한정돼 있어 빠르게 모든 손님 댁을 방문하기에는 버겁거든요. 가까운 집 앞 치킨집에 주문을 하고 시간에 맞춰 확인 전화를 한 번 한 뒤 방문하시면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좋은 방법이었다. 살짝 귀찮기도 하지만 그래도 축구와 치킨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데 이 정도 못할 것도 없었다.
주문 배달의 측면을 노려라!
어느 정도 감이 오는가. 업계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모두 종합해보자. 이게 바로 모범 답안이다. 경기 시작 4시간 전에 미리 예약 전화를 해 후라이드 치킨을 주문하고 직접 시간에 맞춰 가게로 치킨을 가지러 간다. 나이지리아의 측면을 공략해야 하는 것처럼 주문 배달에도 분명 정면 돌파가 아닌 측면 돌파가 필요하다. 반대로 생각해봐도 이해가 쉽다. 경기 시작 직전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주문하고 집에서 이를 목 빠지게 기다린다면 당신은 아마 나이지리아전 때 주문한 치킨을 한국의 16강 경기 때 받아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이지리아전은 새벽 3시 반에 시작하지만 치킨집들은 대부분 이 시간에도 영업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를 참고해 대표팀 선수들이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시원한 승리를 거두는 것처럼 치킨과의 맞대결에서도 대승을 한 번 거둬보자. 닭에게는 미안하지만 대표팀이 승승장구해 전국의 모든 치킨집도 대박 행진을 이어가길 바란다.
김현회기자 footballavenue@nate.com
악 ㅋㅋㅋ 하나같이 깨알같은 내용이다. 진짜 배꼽빠지게 웃으며 읽었다.
나이지리아전 치킨 필승 전략.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치킨집 아들의 고충. 이부분이 제일 대박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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