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여행 / 카트만두 여행

카트만두에서 만난 평화운동가 벤자민 모네




카트만두에서 이런 인연을 만날줄 몰랐다. 그것도 뜬금없는 길거리에서 말이다. 

오전에 파탄 더르바르광장에 다녀오고나서, 점심을 먹은뒤에 정한 행선지가 스와얌부나트 사원이다. JTBC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네팔편>에 나왔던 하얀색 스투파가 있는 수잔 어머니의 운동코스로 나왔던 그 언덕의 사원말이다. 카트만두에 도착하자마자 택시타고 이동하면서 봤었던 사원이기도 했다. 스와얌부나트는 카트만두를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부르는 곳으로 꼭 가봐야할 곳이라 하기에 목적지로 정했다. 약 2.7km 떨어진 곳이라 40분쯤 걸어서 가면 되는 거리였다.


흙먼지가 날릴것을 예상하고 마스크를 쓰고, 야구모자를 쓰고 걸어가고 있는데 자꾸 현지인들이 말을 걸어왔다. "니 모자 멋있어!" 뭐 이런 말을 하면서 지나가는데, 내가 딱 봐도 외국인처럼 보였나보다. 다들 비포장도로를 요리조리 피해가는 나에게 말한마디 걸어보려고 슬쩍 다가와서 어디서 왔냐고 묻기도 한다. 그러다가 오토바이 한대가 내 옆에 서게 되는데...





이날 만난 사람이 바로 벤자민 모네(Benjamain Monnet)였다. 

비포장도로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걸어가는 도중에 내 옆에 레게머리를 한 서양인이 오토바이를 타고 서있는거다. 그러면서 어디서 왔냐 물어보더니 한국에서 왔다니까 한국어를 늘어놓는다. "저 앞에 사원가는거면 태워줄께요." 능숙한 한국어로 이야길해서 깜짝 놀랐지만, 뭔가 그 한국어가 안심이 드는 느낌이라 오토바이를 얻어타게 되었다. 인도였으면 전혀 상상도 안했을 상황이었다. 낯선 누군가의 오토바이를 훌쩍 얻어타고 이동한다는건 정말 위험한 짓임이 틀림없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인인데다가 네팔이니까 얻어타는 거라는 마음속 위안을 삼고있는데, 이분이 하는 이야기기에 깜짝놀랐다. "나 법무부에서 한국 못가게해요. 왜냐면 감방갔다왔거든요." 




헉... 




난 진심놀라서 오토바이에서 뛰어내려야하나 싶었다. 한국 법무부에서 입국금지 할정도면 범죄자라고 생각했기때문이다. 사원이 코앞에 보이는데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서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오토바이에서 뛰어내려야하나?' 이 사람은 자기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은듯했다. 무사히 사원앞에 도착했고,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싶었다."내가 오토바이를 태워줬으니 차한잔 사줘~!"라는 이야길 한다. 뭐가 되었든 오토바이에서 내리는게 중요한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고, 무사히 내렸다. 스와얌부나트 사원앞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서 네팔어로 블랙티를 주문했다. 





이 근처에 구입할게 있어서 온거라 잠시 뒤에 다른 친구가 올 예정이라 했다. 자기는 프랑스 사람인데 현재 카트만두에서 사업을 한다고 했다. 올 크리스마스때 프랑스에 돌아가 파티를 할껀데, 그때 필요한 걸 구입하려고 사원앞에 상점을 들리는 거라 했다. 오늘 구입한 물건들을 프랑스로 보내야하는데, 그걸 도와줄 친구가 오고 있다는 거였다. 물어보지도 않은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는 벤자민을 물끄럼히 바라봤다. "차한잔 마시며 기다리자!"라며 싱글생글 웃더니 천 가방에서 노트북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나에게 갑자기 닥친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그는 오랜만에 만난 한국인이 반가웠던 모양이다. 카트만두 시내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게 한국인인데, 나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는 벤자민은 신이나보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쩜 나는 대단한 사람을 만난거라 생각했다. 그는 2012년 제주 강정마을에 미군해군기지가 들어선걸 반대하던 평화운동가였다. 그래서 한국에 3년간 있어서 한국어를 제법 할 줄 알았고, 시위때문에 감옥까지 갔다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강정마을에서 있었던 영상을 보여주며, "너는 왜 강정마을 이야기를 몰라? 한국인들은 사회에 관심이 하나도 없어, 오직 케이팝만 중요하다고 생각해."라며 일침을 가했다. 그렇다. 2012년의 나의 기억속에 강정마을이란 키워드는 없었다. 나의 2012년은 휴학후 복학했고, 오로지 토익점수과 자격증을 따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었다.





제주에서 있었던 사진들을 보여주는 벤자민은 굉장히 한국을 그리워했다. 특히 강정포구에서 카약을 타고 구럼비 바위 진입을 시도하는 모습은 깜짝 놀랄만 했다. 경찰들과 부딪히며 무자비하게 맞는 모습도 있었다. 경찰의 폭력대응에 더 놀란건 나였다. 그야말로 한국에서 이런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나에게 노트북을 놓고 가더니, 그는 물건을 구입하러 나섰다. '아니... 맥북에어를 그냥 놓고 나간단 말이야? 도대체 나를 어떻게 믿고 저러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드는 찰나에 벤자민이 만나기로 했던 친구분이 왔다. 네팔 박다푸르 출신의 네팔인이었다. 그분이랑 나랑 둘이 앉아서 벤자민의 한국에서의 활약(?)을 지켜보았다. '저사람 진짜 대단한것 같아...' 나의 감상평이었다.


2015년 지금도 강정마을은 제주 해군기지 문제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이 주변 아주머니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었다. 서로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다. 

물건을 구입하고 돌아와서는 자신의 네팔 연락처와 주소를 꼼꼼히 적어준다. 카트만두에서 무슨일이 있으면 연락하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네팔어로 자기소개하는 법도 알려주고, 한국에 돌아가서도 사회에 관심을 가지라며 이야길 건넸다. 그에게 손을 흔들며 헤어지고 나서,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모르던 세상의 이야기가 많구나.'








네팔 여행기는 2015년 4월 25일 네팔을 강타한 진도 7.9지진 이전인 2014년 11월에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여행기는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 작성되어 예약글로 공개되고 있습니다. 글 전체를 수정할 수 없어서 제가 아름다운 네팔을 만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지진으로 고통받는 네팔을 위해 포스팅마다 유니세프 네팔 어린이후원하기 배너를 넣습니다. 저 또한 네팔여행기가 업로드되는 기간내의 구글애드센스 수익을 네팔을 위해 전달할 예정입니다. 제 글을 통해 네팔을 알게 되신 분들이 계시다면 위기에 처한 네팔을 위해 작은 희망을 전달해주세요. #Pray for Nep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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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식도락가를 꿈꿉니다! By.silverly(실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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