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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나트 고고학 박물관, 사르나트 유적군

Archaeological Museum Sarnath / Sarnath Excavated Site


1주일정도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마지막 성지순례지인 사르나트로 가는길. 스라바스티에서 사르나트로 바로 이동하는 거리라서 솔직히 사르나트에서 1박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일행들 모두 지치는 이 일정을 얼른 끝내고 싶어하는 듯하여 최대한 사르나트를 오늘안에 둘러보고, 바라나시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오전 9시쯤 스라바스티 천축선원 주지스님의 배웅을 받고, 사르나트로 출발!





정말 먼 장거리였다. 확실히 자동차를 타고 인도를 다닐 수 있는 기회는 흔치않아서 이렇게 다니는 기억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싶었는데, 차안에서 수다떠느냐고 별로 남겨둔 기록이 없다. 앞자리 조수석에 앉았던 J오빠의 말로는 길거리에 로드킬당한 개의 시체가 많아서 놀랐다는 점이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서 창밖의 풍경만 바라봐서 몰랐는데, 앞에서 도로의 상황이 다 보이니 끔찍한 동물 사체를 많이 봤다는게... 나는 인도에서 운전은 못하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인도정부의 관광버스 한대를 발견했는데, 버스뒤에 쓰여있는 인크레더블 인디아(Incredible India). 정말 최고로 잘지은 캐치프라이즈. 인도에서 느끼는 대부분이 믿을 수 없는, 믿기힘들 정도로 나의 상식을 파괴하는 그런 일들이 많다. 여행을 하면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이 모든 것을 담은 말이다.


2014년 12월 21일 16시 사르나트 고고학박물관 도착


해가 뉘엿뉘엿질때쯤 사르나트에 도착했다. 사르나트 근방에 다와갈 수록 바라나시 느낌이 드는것이... '아.. 결국은 돌아왔구나.'싶은 기분이었다. 사르나트 고고학박물관과 유적군의 매표소가 같은 곳이라 두장의 티켓을 구입하면 된다. 그것도 모르고 박물관에 갔다가 서둘러 유적군 매표소 티켓을 다시사야했다. 그것도 인도인 여행객들의 무자비한 러쉬를 뚫고말이다. 매표소 티켓을 구입하지못하고, 자꾸 인도인들에게 밀리니까... 결국 우리 렌트카 운전을해준 안누가 대신 티켓을 사다줬다.고액권 지폐는 안받으려고하니 소액권을 미리 준비하는것이 좋다. 인도인들의 입장료가 5루피밖에 안해서 100루피나 500루피 지폐가 별로 없어보였다.



사르나트 고고학박물관 입장료 5루피 (2014.12.21기준)

사르나트 유적권 입장료 100루피 (2014.12.21기준)



사르나트 유적군 마감시간이 오후 5시. 또는 해지기전이라고해서 이보다 정확한 마감시간을 가지고 있는 고고학박물관을 먼저 보기로했다. 다른 박물관과 다르게 철저하게 입구에서 가방과 카메라 등 소지품을 맡기고 들어가야한다. 사진을 안찍겠다고했지만, 절대로 가방 반입이 안된다고해서 급하게 가방을 보관소에 맡기고 박물관안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박물관에서 사진을 찍은 것이 단 한장도 없다.





사르나트 고고학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은 인도의 국장(national emblem/國章)인 사르나트 사자상 원본이 있다.






인도의 지폐 왼쪽 하단에 그려진 인도의 국장이 바로 그것이다.






재미있는건 이 국장의 모습은 4마리의 사자인데, 사르나트 유적군에 있는 아쇼카석주의 꼭대기에 장식되어있던 것이라고 한다. 사자상 아래에 그려진 바퀴모양을 법륜이라고 부르는데, 불교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퀴모양에 비교해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사르나트의 국장인 사자상 아래의 법륜은 인도국기의 중앙에 그려진것과 같다.


인도의 대표적인 상징의 원본이 사르나트에 있으니 이곳을 방문해서 한번 관람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인것 같다. 이외에도 사르나트 유적군에서 발견된 유물들이 꽤 많다.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으므로 사자상과 초전법륜상을 보고 나왔다.



그리고 다시 사르나트 유적군 입장 티켓을 사서 후다다닥 뛰어들어갔다. 문닫기전에 들어가서 경비아저씨가 내쫓기전까지 구경하자는 것이 목표였다. 바라나시에서 사르나트까지 30~40분 걸리는 거리인데, 다시 오기엔 귀찮을것 같으니 온 김에 다 둘러보고 가자는 마음이었다.






2014년 12월 21일 16시 45분 사르나트 유적군 입장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유적군의 모습인데... 넓어보인다.






불교유적지이지만 오른쪽에 자인교 사원이 있어서 영 분위기가...






역시나 터만 남아있는 사르나트 유적군.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있는 이곳은 다르마라지까스투파(Dhamarajika stupa)다. 이 스투파는 부처님의 사리를 보관했던 근본8탑에 있던 사리를 꺼내 다시 인도 전역으로 옮길때 만들어진 사리탑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이 스투파는 그 사리들을 인도 전역으로 봉안했던 아쇼카왕에 의해 만들어졌고 알려져있다. 이곳에서 발굴된 사리함은 뉴델리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사르나트 고고학박물관에 있던 초전법륜상도 이 스투파에서 출토했다. 


되게 슬픈이야기로는... 이 스투파는 13m정도로 추정하는데, 1794년에 바라나시 일대를 지배하던 마하라자의 궁전을 세울때 UP주의 건설장관이던 자갓싱이라는 사람이 이 스투파를 해체해 건축 재료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스투파가 헐리면서 사리함과 불상이 나왔다고 하니... 씁쓸하다.





우리에게 별로 시간이 없다. 이 커다란 공원처럼 보이는 곳을 빠르게 둘러보려면 핵심 볼거리를 빠르게 캐치해야한다. 다마라지까스스투파와 함께 사르나트 유적군에서 가장 둘러봐야할 것은 다멕스투파. 지도에서 보이는 가장 까만색부분이다. 빠르게 보러 갔다.





저기 보이는 탑이 다멕스투파(Dhamekh stupa)다.

사르나트가 불교 4대 성지가 된 이유가 바로 이곳이 부처님의 첫번째 설법을 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 스투파도 아쇼카왕에 의해 설립된것으로 전해진다. 불교유적지의 다른 것과 다르게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처음 만들어진 이후로 여러번 증축이 되었다. 





이 스투파위 위쪽에 보면 흰천조각들이 올라가있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던져서 위에 올려두는 것이였다. 마치 보드가야 아쇼카석주위에 동전을 던지던것과 비슷한 느낌인데, 난이도는 최상급인것 같다. 천이 힘이 없어서 위로 올라가지못하고 바로 떨어지기때문에 작은 돌을 묶어서 천을 던진다. 원래 아이가 던지던건데, 결국 해내지못하자 아버지가 대신 던지는 모습이었다. 저렇게 던져도 될까싶은데... 스투파 근처에서 사람들이 전부 성공을 할까싶어 구경을 하는 모양새로 바뀐다. 나도 한동안 지켜보다가 목이 아파서 포기. 저 아버지는 성공했으려나...







사람들이 스투파를 돌면서 탑돌이를 하는게 인상적이다.





이 스투파의 외벽에는 꽃모양의 무늬가 새겨져있다.






저 멀리 한국인 성지순례자분들이 보였다.





스투파의 뒷쪽에도 누군가 올려둔 흰 천조각이 보인다.















기도가 끝난 한국인 단체분들이 소녀처럼 인증사진을 찍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일행이 "브로콜리 아주머니들이 사진찍는다!"라고해서 빵터졌다. 어찌나 소녀처럼 사진을 찍으며 좋아하시던지...





사르나트 유적군은 5시에 문을 닫는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비아저씨가 나타나 호루라기를 불며 사람들을 내쫓기 시작했다. 유적군 끝에 있었던 우리도 이제 내쫓겨야할 차례다. 아직 물라간다구띠와 아쇼카석주는 보지도 못했다. 최대한 경비아저씨의 눈치를 보며, 보고가기로했다.






다시 다르마라지까스투파까지 왔는데, 호루라기를 볼며 어찌나 강력하게 내쫓으시던지... 겨우 아쇼카석주 다부서진 밑동만 겨우보고 나왔다. 아쇼카왕이 인도 전역에 30개를 남긴것으로 알려져있지만, 온전하게 남아있는 것은 바이샬리 꼴루와 유적지에 있는 것이 유일하다.





이렇게 쫓기듯 사르나트 유적군을 보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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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식도락가를 꿈꿉니다! By.silverly(실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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