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 / 바이샬리여행 / 불교성지순례

꼴루와 유적지, 릿차위족 스투파

Kolhua Ashokan Pillar / Buddha's Relic Stupa





바이샬리에서 첫번째로 가게된 장소는 꼴루와 유적지. 이곳은 옛날에 화려했다는 공화국 바이샬리의 느낌이라곤 찾아볼 수 없지만, 부처님 열반후 사리를 분배받았고, 이 도시 인근에서 마지막 하안거를 보낸것으로 알려져있어 열성적인 불교신자들이 찾는 곳이라고 했다. 또한 불교성지에서 볼 수 있는 아소카석주중에 제일 파손되지않고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래서 인지 한국인 단체성지순례객들도 빼놓지 않고 방문을 하는것 같았다. 입구에서 기념품을 판매하는 아저씨가 "불상있어요~"라고 한국어로 말을 건네올 정도라는건...


바이샬리 꼴루와유적지 입장료 100루피 (2014.12.17기준/2000원)



나에게 있어서 온통 자몽 생각이 나게 하는 곳이 되었지만...





2014년 12월 17일 14시 45분 꼴루와 유적지


꼴루와 유적지 안으로 들어섰다. 손에는 자몽을 쥐고서, 츄르르릅.





짜잔. 이게 사진으로만 보던 그 스투파와 아소카석주다.

항상 아소카석주는 기둥만 남아있던걸 봐왔던터라 꼭대기에 얹어진 사자가 굉장히 신기하게 보였다. 그런데 인도의 문양인 사르나트의 아소카석주와 다르게 원형 장식이 없이 밋밋한 형태로 되어있다. 나중에 다른것들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바이샬리의 아소카석주를 기억해두었다가 비교해야한다. 꼭.




옆에는 연못도 있다. 

워낙 고요하고, 조용해서 공원에 온 기분이 들었다.





다시 아소카석주와 스투파 구경.

이 스투파는 1번 스투파라고 부르는데, 아소카왕이 세웠다고 전해진다.

난 이 스투파에서 부처님 사리가 나온줄 알았지만... 그것 릿차위족 스투파에서 나왔다고...





그리고 주변에 건축물이 있었던것 같은데, 역시나 불교성지답게 제대로 남아있는 흔적이 없다.





고로... 이 아소카석주와 스투파의 모습을 제외하곤 볼거리가 없다.




진짜다.







그러는 사이에 베트남에서 오신 단체 순례객분들이 오셨다. 베트남분들은 이렇게 하얀색으로 옷을 맞춰입고 성지순례를 다니시는듯 했다. 조용했던 꼴루와 유적지가 북적거렸다. 사람들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괜찮았다.





그리고 뜨거운 햇살은 덤.






Y언니가 스투파에서 기도를 할 동안 햇살을 피해서 스투파 뒤쪽에 있는 그늘이 있는 곳에서 쉬기로 했다. 나중에 경찰아저씨한테 혼나면서 알게된건 유적지의 건물터에 걸터 앉으면 안되는데, 그 위에 앉아있게 되는거였다. 베트남 스님이 앉아계시길래 나도 따라서 앉아있던거였는데... 내가 자리에 앉아있자 이곳에 견학을 온 학생무리들이 사진을 찍자고 모여들었다.


그리고 시작된 포토타임.


한명 한명 전부 내 옆자리에 앉아서 기념사진을 찍어가기 시작했다. 이들은 바이샬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마을에 다니는 학생들이라고 했다. 아마도 외국인 여행객, 특히나 동양인은 보기 힘들었을 터였다. 어찌나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는지. 이들에게 전부 사진을 찍어주고, 심지어 선생님과 기념사진 촬영. 나중엔 단체사진도 찍었다. 나는 찍히는게 억울해서, 나도 찍어보자며 내옆에 앉아있는 학생한명과 사진을 찍었다.





하도 시끄럽게 소녀들이 몰려들자, 선생님이 내쫓기 시작했다.ㅋㅋㅋㅋㅋ

연예인들은 정말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2014년 12월 17일 15시 30분 릿차위족 스투파


다음 장소는 부처님의 사리가 나왔다는 2번 스투파인 릿차위족 스투파(Buddha's Relic Stupa)가 있는 곳이다. 꼴루와 유적지가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져있고, 숙소를 찾을때 봤었던 베트남사원 근처에 위치해있다. 이 스투파 근처에 바이샬리 박물관도 있는데 가지 않기로 했다. 




바이샬리에서도 인기있는 관광지(?), 아니 유일한 관광지라 기념품가게들이 몰려있다. 딱히 살건 없다.





이곳은 입장료가 없다. 그냥 공원같은 곳.





부처님 열반후에 사리를 8등분하여 8개의 스투파에 모셨다고 하는데, 바이샬리의 이 스투파가 랏차위족이 세우고 사리를 봉안했던 곳이라한다. 날란다에서 언급했던 현장의 <대당서역기>에 의하면 아소카왕이 스투파를 열어서 사리의 일부를 꺼내 다시 봉안을 했다고도 한다. 


1958년 발굴을 했는데, 사리용기에서 부처님의 사리가 나와 대대적으로 이슈였다고 한다. 8개의 스투파가 정확하지 않기때문에 사리를 발견한건 커다란 사건이였다. 이 사리는 파트나박물관에 있다고 하는데, 파트나박물관을 가지 않아서 여전히 있는지는 모르겠다.







부처님의 사리가 있었다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초라한 모습에 실망했다. 애초에 입장료를 받지 않는 것부터 이유가 있겠거니 싶었는데, 너무 방치해두는것이 아닌가싶었다. 인도 정부는 불교유적지를 이따위로 관리를 하는것인가?! Y언니도 누누히 이야기했지만, 이 유적지가 미얀마에 있었다면 벌써 황금불탑이 커다랗게 세워져있을 거라 했다. 뭔가 안타가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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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식도락가를 꿈꿉니다! By.silverly(실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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