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 / 산치여행 / 불교성지순례
산치대탑 제1번 스투파
Great Stupa- Sanchi
산치(sanchi)를 여행하게된 단 하나의 이유는 산치대탑으로 불리는 1번 스투파를 보기 위해서였다. 부처님의 일생과 전혀 관련없는 작은 시골마을에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불교유적지로 손꼽히는 곳이 산치다.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교 부조가 남아있다는 산치의 스투파를 보기위해서 찾아온 것이니만큼 1번 스투파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남겨보기로 한다. 아무래도 종교적 견해도 부족하고, 단순히 관광의 목적으로 찾아온 느낌이였던터라 간략한 기록으로 남겨본다.
숙소로 정한 스리랑카사원에서 도보로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에 떨어져있는 산치 유적군. 작은 산치마을에 둘러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보팔에서 산치까지 1시간 30분을 이동할 만큼 이곳을 찾는 여행객이 정말 많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한국인 젊은 배낭여행객들에겐 별로 매력없는 도시로 느껴지기까지 했으나... 아무래도 불교유적지이기때문에 나이가 지긋한 단체여행객 분들은 찾아올 법한 곳이라 생각이 들었다.
산치유적군의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시간이 촉박하다면 산치에 당일치기로 관광후에 야간열차타고 다음 도시로 이동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 현지인들은 10루피의 착한 입장료를 내지만, 역시 외국인들에겐 별도의 요금이 책정되어있다. 티켓을 구입한 당일에만 관람이 가능하기때문에 티켓 뒷면에 당일 방문 날짜 도장을 찍어주었다. 나름 기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산치유적군과 산치유적군에서 발굴된 유물이 전시되고 있는 고고학박물관 입장까지 포함되어 있기떄문에 둘러보는 것이 좋다. 뭐 1타 2피 아니겠는가?
산치유적군 입장료 250루피 (2015.1.25기준/5000원)
위성사진으로 바라본 산치유적군의 모습. 이렇게 봉긋한 언덕에 위치해있다. 신기한건 불교의 영향력이 이곳까지 미쳤을 뿐더라, 한창 날뛰던 무슬림세력의 파괴를 빗겨나가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시골인탓에 지금도 찾아오기 어려워서 그랬으리라. 이 유적지는 영국의 기병대장이었던 테일러에 의해 1818년 발견되었다.
산치유적군으로 올라가는길. 제법 힘이 들었다. 헉헉...
오전에 비가내린탓에 안개가 자욱하니 깔린게 혼자 올라가는게 조금 걱정이 되긴했다. 하지만 유적지에 다다르자 걱정이 무색하게 관람중인 사람들이 많았던 곳이다. 걸어서 찾아오는 사람보다는 차량을 이용해 찾아오는 여행객들이 많았다. 물론 인도 현지인들과 스리랑카 단체 순례객. 그리고 드물에 일본인 단체여행객들이 보였다.
2015년 1월 25일 12시 03분 산치 불교 유적군 도착
산치 불교유적지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스투파, 승원구역 비하라, 사원구역 이띠야로 나뉘지만 스투파만이 오롯이 남아있다.
힘차게 걸어서 1번 스투파를 만나러 간다. 딱봐도 제일 멋진 탑문을 가지고 있는 스투파가 보인다.
사람들이 기념사진 촬영을 하느냐 탑문만 찍을 수 있는 타이밍 찾기가 어려웠다. 날씨가 흐릿한 탓에 예쁘게 찍지 못한게 아쉽기만하다. 제1스투파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점은 역시 스투파의 동서남북에 세워진 토라나(torana)라고 부르는 문이다. 인도 불교 미술사에 핵심이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부조가 새겨져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얼마나 조각이 세심한지 요리조리 뜯어보는 재미가 있을 정도다.
탑문이 동서남북 4개가 있지만,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북쪽문에 대해서만 좀 이야기를 하겠다. 사실 사진을 이곳저곳 찍어오긴했는데, 문을 구별하지 못하는게 함정이다. 북쪽문(토라나)는 산치 스투파에서 가장 상태가 좋다. 그리고 부조에 대한 설명이 탑문 앞에 설명되어있으니 이에 대한 스토리를 알게된다면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오디오가이드라도 있었으면 하루종일 토라나 구경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문 한짝만 보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북쪽 토라나 앞면
북쪽토라나 뒷면
여기는 다른쪽 방향에서 바라본 토라나들
북쪽토라나 정면 상단부
맨 상단에는 32개 바퀴살이 있는 법륜이었으나 파손된 것으로 보고 있다. 양쪽에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 불교 사찰에 입구에 있는 사천왕격의 신장으로 보여진다.
북쪽토라나 정면 하단부 부조
북쪽토라나 정면 왼쪽기둥 첫번째 - 망고나무의 기적
가끔 종교에는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 전해져 오곤 하는데, 내 기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종교적인 믿기 힘든일이라하면 하나님의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했다던가 불교에서 말하는 이교도들과의 대결 같은 것들이다. 이미 스라바스티 오라즈하르(에어포트)에서 부처님의 신비한 능력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부조는 일명 '망고나무의 기적'이라 부르는 이야기다. 부처님이 망고나무씨를 심었는데, 순식간에 싹이트고 자라나 사람들이 모두 따먹고 남을 정도로 열매를 맺었다는 이야기다. 오라즈하르에서 처럼 공중을 올랐던 이야기가 전해내려오는게 바로 망고나무 아래서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내 인생에서 경험해 보고 싶은 일중에 하나가 인도에서 망고를 먹는 것인데, 꼭 여름에 방문하리다.
북쪽토라나 정면 왼쪽기둥 두번째 - 기원정사
급고독장자가 승단에 기증하였던 사원인 기원정사는 스라바스티에서 가보았던 곳이다. 부처님의 방이라고 불리는 곳은 여러해 안거를 보내실 정도로 오랜시간 머물었던 곳이다. 이 부조에서 맨위에 아치형 창문이 있는 건물이 부처님의 방인 '간다꾸띠'라고 한다.
북쪽토라나 정면 왼쪽기둥 세번째 - 보배경행대
사람들이 기다란 건물아래에 합장경배를 하고 있다. 이 모습은 보배경행대를 말한다고 한다. 이것은 보드가야 마하보디사원에서 보았던 것이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난 셋째주에 천신들이 공중에 만든 보배경행대 위를 왔다갔다하며 경행하였다고 알려져있는데, 이 부조에서 보이는 사람들은 천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그림만봐서는 어떻게 알아낸건가 신기했는데, 다른 난간에 비슷한 그림이 그려져있고 명문이 쓰여져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재미있는건 토라나에는 부처님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나타낸 것이 한개도 없는데, 어떤식으로든 부처님을 상징하는 무언가를 남겨놓았다는 점이다. 그것을 찾아내는게 또 하나의 재미이기도 하고.
북쪽토라나 정면 왼쪽기둥 네번째 - 왕의 행차
이 부조도 다른 난간에 비슷한 그림이 그려져있고 명문이 쓰여져있기때문에 알려진 것이다.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가 수행원을 이끌고 성문을 나가는 모습으로 부처님을 친견하러 가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북쪽토라나 정면 왼쪽기둥 다섯번째 - 일상생활
코끼리가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 귀여운 부조. 기원전 1세기 인도인들의 일상생활을 볼 수 있는 민속자료로 알려져있다. 늘 신기한건 코끼리를 타고 다녔다는 옛 인도인들의 모습인 것이지. 얼마전에 영화 [대호]를 보면서, 조선시대에는 앞산에 살던 호랑이가 민가에 내려와서 사람들을 위협하던게 심심찮게 보고 될 정도로 흔한 일이었다고 한다. 그런 믿을 수 없는 이야기처럼 인도의 옛 모습도 코끼리가 흔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기하다.
북쪽토라나 정면 오른쪽기둥 첫번째 - 상카시아 보배계단
이 부조에서는 부처님을 보리수 나무로 표현하였다. 보배 계단을 중앙에 새겨놓았고, 부처님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다고 표현을 한 것이다.
북쪽토라나 정면 오른쪽기둥 두번째 - 사문유관과 출가
부처님이 까삘라성 밖에서 보았다는 죽음, 늙음, 병듦 그리고 출가자들.
북쪽토라나 정면 오른쪽기둥 세번째 - 샤카족 법문
부처님의 친족들인 샤카족의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중에 우리가 주목해야할 인물은 부처님의 제자인 아난다와 아누룻다가 있다.
북쪽토라나 뒷면 오른쪽기둥 첫번째 - 산치 스투파
산치대탑에 그려진 산치스투파의 모습이다. 천상의 새라고 부르는 인간의 몸에 말의 머리를 지녔다고 알려진 낀나라가 날고 있다. 마치 그리스로마신화의 켄타우로스같은 느낌이다. 하단에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인도의 전통악기와는 달라 다른 민족이었을 거라 추측한다고 한다.
북쪽토라나 뒷면 오른쪽기둥 두번째 - 원숭이의 꿀 공양
법구경에 나오는 이야기중에 하나라는 원숭이의 꿀 공양. 이 부조에서도 부처님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고, 보리수나무로 조각이 되어있다.
스투파는 돌난간 뒤로 길이 나있고, 계단을 따라 기단으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탑문에 새겨진 부조 하나하나 설명을 하는 것도 어려운게... 정보를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북쪽토라나 일부를 남겨두는 것으로 했다. 정말 방대한 불교의 이야기를 살펴보는것도 정말 오랜시간이 걸렸다.
곳곳에 남아있는 승원의 흔적들. 승원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고고학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아소카석주의 누운 부분만 따로 놓아둔 곳
산치대탑을 구경하고 돌아가는길에 만난 학생들. 우르르르 교복을 입고오는데 무서웠다. 이건 마치 쿠시나가르 열반당에서 만났던 단체학생들을 마주한 느낌이랄까? 산치는 되게 외로운 시골마을이라 생각했는데, 산치 유적군만큼은 외로울 틈없게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곳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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